본문 바로가기
자기계발/독서

수레바퀴 아래서

by 핸아고고 2026. 5. 25.

 
 

제  목  : 수레바퀴 아래서

작  가: 헤르만 헤세

옮긴이 : 김이섭

출판사 : 믿음사

 

 
ㅁ 읽은 동기

미디어 어딘가에서 추천한 것 인지 교보문고 장바구니에 담겨있었다.
주말 쿠폰이 뿌려지고 일정 이상의 포인트가 쌓이면 교보문고를 향해 걷는다.
걷기운동의 반환점이 되는 교보문고를 그냥 지나쳐 갈 수  없는게 하나의 동기라면 동기 일수 있다.
헤르만 헤세 낮익은 이름,  부담스럽지 않은 책 두께가 두번째 동기 일 수도 있다.
 
ㅁ 줄거리

 

정리 중...
 



ㅁ 등장인물

정리중...

한스 기벤라트(주인공)
천재는 외로운 것인가?  기성세대의 권의와 업악보다 누군가와의 이해와 교감 없는 소통은 고립되고 더 외롭다.
억눌린 뇌파의 파동은 결국 한 곳으로 향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에 더 찬란한 봄과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커다란 삶의 만족감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자살인지 사고인지 모를 의문스러움으로 생의 중추신경끊어버린 한스의 결말이 참담하다.
 
요제프 기벤라트(주인공 아버지)
어디나 있을 법한 아버지인데 그의 부정적인 묘사로 그를 욕하고 싶지 않다.
똑똑한 자식을 잘 키워보고 싶었을텐데…
나는 그의 아버지 역할에 일부나마 감정이입을 할 수 있었다.
근 삼여년간 키워온 몬스테라!
여러번의 분 갈이와 노력으로 정성을 다해 키웠지만 크고 멋있는 찢잎을 만들어낼 몬스테라에게 나의 권위의
 칼날을  휘둘렀다.
생을 달리한 나의 몬스테라. 잘키우고 싶다는 나의 욕심은 주인공의 아버지의 마음과 같은 것이였나 보다.
 
  
헤르만 하일너(한스의 친구)
 한스에게 입맞춘 장면에서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장르가 왜이래? 
곱씹어 보니 그도 아직 성장하고 있는 어린아이에서 소년으로 어른으로 나아가는 혼란의 단계에 있는 어린 소년이였다.
가족혹은 엄마, 아빠에게 할 수 있는 아이의 애정어린 사랑의 표시라고 생각해보니 이해가 갔다.
치기어린 그의 행동을 더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지 않는 어른들의 냉담함과 혼자 싸웠을 그가 안스럽다. 퇴교 후에도 글의 말미에도 그의 소식을 알려주지 않는다.  한스를 보내며 다시 보자고 말하는 교장의 영혼없는 맨트가 아닌 진심을 다해 이 소년의 무소식에 보이지 않는 응원을 할 뿐이다.
 
플라이크 (구둣방 아저씨)
 소설 속에는 선과 악의 구도가 없는 데도 불구하고 플라이크 아저씨는 선의 구도에 넣어야 되는 것이지를 잠깐 고민했다.
그도 기성세대의 고리타분함을 가지고 있지만 마을의 목사, 교장선생님과 같은 궤를 두지 않는다.
학문으로서의 신앙이 아닌 믿음으로서의 신앙을 믿는 어른
한스가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어른 일 수도 있었을 텐데
그의 성장기를 한 단계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도록 조카 엠마를 소개시켜준 것 아닌가?
 
 
엠마 게슬러(플라크 아저씨의 조카)
한스에게 열병과도 같은 사랑의 불씨만 지피고 가버린 여자사람.
그녀의 욕정에 농락당한 건 한스다.
사랑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처음 경험한 한스의 상실감이 안타깝게 다가왔다.
 


ㅁ 책을 읽고

사람들이 원하는 삶!  그들의 권위에 기대 행복한 삶을 그려보지 못한 완성하지 못한 그림 한장!
지식을 머리에 가득 채웠다고 행복도 덩달아 채워지지 않는다.
밤새 공부에 매달려 노력했지만 공부로 채워지지 않는 삶의 공허함과 어른들의 기대
한 세계를 이해 해줄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갈망
다시 시작하는 노동자의 삶 속에서도 기대했다. 그가 행복하기를 
주위의 조롱에도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기를
 
내가 기대에 부합하는 지식으로 빛날때 나를 격려해 주고,
정작 내가 힘들때 나를 위로해 주지 않은 사람들 유죄!
내 한계를 스스로 넘지 못한 한스 기벤트도  유죄!
단죄의 칼을 들이대는 나도 유죄! 
나의 잣대로 누군가의 재단으로 차란한 사계절을
힘들게 버티고 있을 이름모를 한스에게
유죄가득한 이 곳에서
 수레바퀴 아래 깔리지 않기 위해,
그리고 누군가를 수레바퀴 아래 밀어 넣지 않기 위해,

나는,
너는,
우리는
무엇을 해야하는 걸까?

 

 



나는 주인공 한스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문장처럼
한 세계를 파괴할 만큼은 아니더라도 알에서 나오는 과정을 찬찬히 보고있는 중이라 생각했다.
기본 배경지식 없이 읽은 책은 충격적이다. 군데군데 복선을 깔고 있음에도 나는 왜 눈치채지 못했을까?
학창시절 학교에서 배웠던 복선,  함축적 의미, 글의 의도, 인물에 대한 생각을 스스로 해보니 문학이 더 매력적이고 재미있다.
누군가의 지식에 기대지 않는 정답지 없는 문학을 나혼자 읽어가는 재미 굿굿!


p.63
과학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오래된 포도주를 언제나 새로운 술 포대에 담는다. 새로운 술포대에 담기 때문에 전통적인 가치를 망치게 되는 것이다. 반면에 예술가들은 얼핏 보기에 그릇된 주장들을 태연스럽게 고집하면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가져다 주었다.
이것은 
언제나처럼 예술은 믿음과 사랑, 위로와 아름다움, 그리고 영원에 대한 예감의 씨앗을 뿌려 왔다.또한 풍요로운 토양을 새로이 발견하여 온 것이다. 그것은 삶이 죽음보다 강하고, 믿음이 의심보다 강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주제를 아우르는 문장이면서 헤르만 해세가 예술에 대해 말 하고 싶었던 궁극적인 지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이성과 논리만으로 살수 없다. 삶을 지탱하는 것은 분석과 비판보다 믿음과 사랑 아름다움 영원에 대한 희망에 더 가깝다는 것을 이 문구를 통해 여실히 보여준다.
 


 

'자기계발 > 독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톨스토이 단편집  (0) 2026.06.11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0) 2026.06.10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  (0) 2026.05.05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0) 2026.04.19
딱 1년만 미쳐라  (0) 2026.04.08